나의 믿음생활에서 가장 잊지 못할 훈련은 당연히 성경 요절을 암송하는 것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네비게이토에서 나오는 성경 요절 암송 카드가 있었습니다. 나는 20대 중후반 시절 그것을 사서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성경을 암송했습니다. 때로는 화장실과 나의 책상 앞에 놓고 수시로 암송했습니다. 혼자 길을 걸을 때에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 때로는 공부하는 중에 말씀을 암송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때에 암송 말씀은 내 안에 기록되어져 나의 믿음이 되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성경 요절 암송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나의 생각을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특히 젊은 시절 내가 반복해서 암송했던 말씀은 나의 마음의 독기를 제거하여 주었습니다. 젊음의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조급함과 인생에 대한 불안감을 제거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미래의 인생길에 대한 불안감을 믿음과 비젼으로 바꾸어주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주의 말씀이 내 길에 빛이요 내 발에 등이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서 확신하게 하고 천국에 대해서 소망을 갖게 하고 무엇보다도 마음을 단련하여 강건하고 흔들림 없는 믿음의 의지를 굳게 하여 주었습니다.

매일 저녁이면 암송하는 성경 말씀의 은혜를 일기로 기록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암송되는 성경 말씀의 은혜는 매일 다양하고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게 하였습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다양한 은혜를 경험한 것입니다. 그리고 기록되어지는 일기를 통해서 내가 경험하는 하나님은 말씀 속에서 놀라운 능력을 공급하시는 말씀의 하나님이신 것을 실제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말씀의 능력은 세상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서 죽게 되고 하나님에 대해서 살게 되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들어서 우리 교회는 성경 암송을 통해서 말씀의 영성을 회복하는 훈련의 시간을 갖습니다. 지금까지 2번의 대회를 거쳐서 매주 반복되는 주보의 성경 요절을 다같이 암송하면서 성경을 마음에 채우는 시간을 갖았고 이제 오늘 주일은 3번째 시간을 갖습니다. 벌써 2회 동안 최소한 24개 이상을 암송했습니다. 만일 오늘까지 다 암송하면 36구절 이상을 암송할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평생에 암송하지 못했던 성경요절을 올 한 해에 더 외우는 기회가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반복하면서 정확하고 분명하게 암송하면 마음에 기록이 되고 그것을 믿으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어떤 칼보다도 예리하여 우리의 영혼과 골수를 새롭게 하는 능력의 말씀으로 활동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마음에 믿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면 그 말씀의 능력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어떤 형식과 체험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고 말씀을 암송하면서 마음에 의지하고 믿는 말씀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변화하는 세대에 변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암송을 통해서 말씀의 영성이 더욱 회복되는 우리가 되어지기를 소원합니다.

지난 주간 ‘암살’ 영화를 보았습니다. 모처럼 감동을 느낀 좋은 영화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배우들이 연기를 잘 한 것도 있고, 탄탄한 영화 구성도 좋았지만 아무래도 일본에 대한 상처를 후련하게 씻어주는 광복군들의 빛나는 조국애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광복을 위하여 아까운 자기 생명을 기꺼이 내어주었습니다. 어쩌면 광복 70주년을 맞은 지금 대한민국은 그들의 생명의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비록 몸은 미국에 있지만 대한민국을 모국으로 갖고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40대 후반에 살던 한국을 떠나 미국에 올 때에 어떤 목사님이 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왜 좋은 나라를 버리고 힘든 외국에 가서 살려고 하는가?” 였습니다. 그때 나는 “나는 내 나라를 떠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몸은 비록 이 땅을 떠나지만 어디에 가 있든 나는 여전히 대한민국 국민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실 몸은 우리나라 땅을 떠나 있지만 오히려 미국에 살면서 내면적으로는 우리나라에 대한 마음과 관심은 한번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물론 광복군처럼 독립운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나는 깊은 골수까지도 대한민국 국민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감사합니다.

가끔 내가 만나는 테니스 게임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외국인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들에게 나는 우리나라를 아느냐거 묻곤 합니다. 그런데 그둘 중에 상당수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설픈 영어로 우리나라 자랑을 하기도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김치나 불고기 같은 음식에 대하여, 우리나라 삼성이나 엘지같은 회사의 전자제품을 중심으로 설명을 하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대단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마음이 뿌듯합니다. 분명히 이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같은 높은 반열에 오르게 된 것임을 절감합니다.

어느덧 5년차로 접어든 미국 생활을 하면 할수록 지금까지 대한민국에 살면서 내가 누렸던 것들을 비로소 감사하는 기회들이 더 많습니다. 당연하게 누렸던 한국에서의 일상이 얼마나 귀하고 좋았던가를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특히 계절을 따라 맛있게 먹었던 풍성한 음식들과 우리나라의 선조들의 역사가 묻어있는 유적지, 그리고 고유한 우리나라의 산과 바다를 보았던 것들이 이제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외국 생활을 하면 할수록 한국에서 보내었던 모든 소중한 시간들은 더 깊이 되새기게 되게 됩니다. 어쩌면 당시에는 하나님이 주신 일상의 나라에 대한 감사를 소중하게 여기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 나라에서 살 때에는 비교가 되지 않음으로 제 나라에 대하여 감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가 살던 땅을 떠나서 흩어져 살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흩어져 살면서 조국 이스라엘 대한 구속과 회복에 대한 갈망을 갖았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들은 하나님께 나라의 소중함에 대한 잃었버렸던 감사를 회개하였습니다. 어쩌면 지금 나도 하나님 앞에 나의 모자란 것들을 훈련받고 있는지 모릅니다.아마도 평생 한국에서 살았다면 지금 외국에서 조국에 대해서 느끼는 이 경험을 경험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외국에서 더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공감이 됩니다. 나에게 대한민국의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뉴욕침례교회는 7월 27일부터 한주간 아이티 단기 선교를 갑니다. 재작년에 이어서 두 번째입니다. 이번에는 5명이 한 팀입니다. 비록 적은 인원, 짧은 기간이지만 의미있는 시간이 되어지기를 소원합니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 선교의 목적을 갖고 집중적인 체험의 기간을 갖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만큼 소중합니다. 그러나 해마다 많은 교회들의 단기선교는 소중한 돈의 낭비, 교회들의 경쟁적인 이벤트 행사, 부족한 준비 등으로 인해서 많은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단기선교의 역기능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순기능을 생각하면서 교회의 단기선교는 필요합니다.

교회의 단기선교는 교회 공동체의 주님의 사랑의 헌신을 시험하는 기회가 됩니다. 선교는 몸과 물질의 헌신이 없이는 어렵습니다. 가는 선교사 뿐 아니라 보내는 선교사인 모든 교회 동체가 함께 헌신해야 합니다. 힘든 시간과 물질을 결단하고 선교에 순종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교의 헌신에 동참하는 교회는 개교회주의에 갇힌 교회관을 극복해야 합니다. 교회당 안에 갇힌 신앙도 넘어서야 합니다.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도 초월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 나라의 비젼을 바라보는 마음이 선교의 헌신으로 결단하게 됩니다. 단기선교의 시간은 자신과 가족과 개교회에 갇힌 좁은 신앙을 좀 더 넓고 큰 신앙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업그레이드 하는 소중한 기회가 됩니다.

교회의 단기선교는 복음의 기쁨을 경험하는 작은 기회가 됩니다. 주님은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는 자의 기쁨은 주는 자만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선교지에서 복음과 함께 준비된 것들을 나누어 주면서 갖는 기쁨은 고통 가운에 경험하는 산모의 기쁨과 갖습니다. 선교지에서 경험하는 이 놀라운 복음의 기쁨은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재조정해주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 일상의 교회당 중심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무감각하고 활기를 잃은 신앙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 대한 감사를 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경우에 단기선교를 통한 체험은 신앙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단기선교의 체험은 선교지의 유익보다도 개교회의 복음의 회복을 위해서 더 필요합니다.

교회의 단기 선교는 세계를 품은 신앙의 기회가 됩니다. 단기선교는 지금 여기에서 온 세계로 도전하는 기회의 경험을 하게 합니다. 지금 우리는 미국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인 남미를 중심으로 도전하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필요로 하는 곳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언젠가는 아프리카에도 도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우리 나라가 속한 아시아에도 복음은 아직도 많이 필요합니다. 동구권의 유럽에도 필요합니다. 지속적으로 선교에 도전하면 우리의 신앙은 점점 담대하게 넓고 크게 변화될 것입니다. 점점 선교에 도전하면서 점점 주님의 심정을 갖고 세계를 위해서 기도할 것입니다. 점점 선교하면서 몸과 돈과 시간을 의미있게 사용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과거 굴지의 한국의 대기업가의 유명한 말 가운데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넓은 세계를 돈을 벌 수 있는 도전의 장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세상을 자신의 성공과 이익의 장으로 본 그 기업가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세상은 넓고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의 세상을 향한 사명은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세계적인 기업 삼성의 실제적인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메르스 사태에 대해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사과의 마음을 담은 겸손한 사과문 발표와 함께 두 번이나 허리 숙여 인사하면서 잘못을 시인하고 사죄의 뜻을 고백했습니다. 이번 사과는 세계적인 서울의 삼성병원이 메르스 질병의 진원지가 되다시피 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기업의 리더가 솔직하게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침을 뱉고 경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개 숙인 리더에게서 배우는 것은 잘못을 시인하는 용기입니다. 바르고 지혜로운 리더는 고개 숙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어떤 경우에 미련한 리더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모릅니다.명백한 자기의 잘못을 직면하지 못하고 자존심을 앞세우면서 잘못에 대해서 사과하는 일은 수치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명백한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피하고 핑계를 대려고 하다가 더 문제를 키우게도 합니다. 그러나 용기 있게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때에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습니다. 지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완벽하지 못합니다. 언제든지 리더는 그 자리에서 불완전한 실수와 잘못에 대해서 자기의 한계를 솔직하게 잘못을 시인할 때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리더는 고개 숙이는 책임이 필요합니다. 사실 리더는 고개 숙이는 자리입니다. 한 교회의 담임목사가 된다는 것은 더 고개 숙이는 책임이 따르는 자리입니다. 교회 목장의 목자가 된다는 것은 더 고개 숙이는 자리이며 전도회의 회장이 된다는 것은 더 머리를 숙이는 자리입니다. 외부 한 단체의 회장이 된다는 것은 더 고개 숙이는 책임이 따르는 자입니다. 물론 리더의 자리에서 받는 박수가 있고 영광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리더는 그 위치에서 위기가 발생하여 보면 나타납니다. 대개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운 환경이 되면 도망갑니다. 그러나 진정한 리더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책임을 인지하고 잘못을 통감하면서 그것을 위해 희생하고 감당하고자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리더가 먼저 고개 숙이면 거기에 소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리더가 고개 숙이지 않으면 불통합니다. 대개 잘못이 문제가 아니고 잘못에 대한 태도가 더 문제가 됩니다. 대개 사람들은 잘못한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잘못한 것을 대하는 리더의 태도가 더 문제가 됩니다. 이미 문제는 지나갔고 이제 더 이상 문제가 발생하거나 악화되지 않기 위해서는 리더가 바르게 대처하고 개선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각자 성도들의 삶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죄를 문제 삼으시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서 회개하지 않는 우리의 태도를 문제 삼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죄를 솔직하게 시인하고 회개하면 정결하게 용서하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래서 회개하는 자만이 천국에 갈 수 있고 사죄의 복을 경험하는 자만이 은혜의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나는 목사가 될 때 3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물질에 대한 고민 둘째는, 잠에 대한 고민 세째는 나의 부족한 인격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첫 번째 고민을 했던 이유는 나의 눈에 비치는 목사님들의 삶에 너무 많은 물질의 부족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고민을 했던 이유는 젊은 시절 매일 늦게 잠을 자는 나로서 매일 새벽마다 일어날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고민은 스스로 보기에 너무 약하고 부족한 인격적인 결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스스로를 보기에 너무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나의 고민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교회 때문이었습니다. 교회를 섬기면서 3가지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목회자로서 소명을 따라 교회를 섬길 때에 매달 교회를 통한 생활비의 공급을 통해서 물질의 염려를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신령한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목사로서 매일 새벽의 기도회를 인도하면서 육체의 잠을 극복하고 말씀과 기도의 자리에 설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교회를 통해서 나의 부족한 인격을 훈련하면서 변화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였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을 체험하게 하시면서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성질 급한 베드로가 인내의 사람으로 훈련된 것도 교회입니다. 비판적이었던 바울이 화평의 사람으로 세워지게 된 것도 교회입니다. 의심 많던 도마가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게 한 것도 교회입니다. 욕심 많던 야고보가 덕 있는 사람으로 새로워지게 된 것도 교회의 힘입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사람들을 교회를 통해서 연단하심으로 온전하게 하십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미련하고 약한 사람들이 교회를 통해서 주님의 일꾼으로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통해서 모범적인 7명의 안수집사를 세우셨고 주님의 사도들을 더욱 권위 있는 일꾼들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칼빈이 강조한 것처럼 신자의 어머니와 같은 곳입니다. 교회 없는 신앙, 교회 없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없습니다.

우리가 공동체 교회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의 자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믿음으로 잘 지키면서 교회를 세워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눈은 눈의 자리에, 코는 코의 자리에, 귀는 귀의 자리에 있어야 하고 손은 손의 자리에, 발은 발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그 자리에서 충성스럽게 사명을 감당할 때에 우리는 서로 연합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귀한 교회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직분자들은 그 직분에 걸맞게 그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사역자들은 그 곳이 청소이든, 설거지이든, 운전이든 그곳에서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스스로 변하고 서로가 도전을 받으면서 우리는 교회의 기쁨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체험 가운데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신앙과 섬김으로 아름답게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지기를 소원합니다.

목회자로서 나의 인생의 대부분의 삶은 반복됩니다. 새벽에 눈을 뜨면 먼저 세면실에 가서 세수하고 옷을 갈아 입습니다. 다음에 방안의 나의 책상에서 짧은 기도를 하고 성경을 묵상합니다. 정한 새벽 시간이 되면 교회당으로 차를 몰고 갑니다. 대부분 정해진 길을 따라 정해진 신호등의 인도를 받아 교회에 도착합니다. 매일 정해진 새벽 기도회 시간에는 찬송을 부르고 말씀을 나누고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이것이 보통 반복되는 아침의 일상입니다. 그리고 나면 때로는 낮 시간에 이루어지는 일상은 심방과 독서와 미팅을 통해서 하루의 일정들은 반복적인 연속입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뉴스를 보고 몸을 씻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묵상하고 잠자리에 들면서 반복되는 하루의 삶을 마치게 됩니다. 대부분의 나의 일상은 거의 반복됩니다. 누군가 나에게 목사가 되어 가장 감사한 것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어떤 이유에서든지 하나님과 좋은 반복을 날마다 갖는 것입니다.

좋은 삶은 좋은 반복의 습관으로 결정됩니다.인생은 좋은 것도 반복되고 나쁜 것도 반복됩니다. 좋은 반복과 나쁜 반복이 내 삶에 반복되는 이유는 먼저 내 안에 반복적인 생각, 반복적인 행동들이 이미 습관으로 몸에 배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쁜 반복을 줄이고 좋은 반복을 늘리는 것입니다. 야구선수로 말하면 빈 볼의 횟수를 줄이고 안타를 쳐서 타율을 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나에게는 종종 테니스 운동을 하면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정확하고 파워 있는 공을 치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볼을 정확하게 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볼을 정확하게 마지막까지 보지 못하면 몸의 자세가 정확하지 못하여서 결국 파워가 떨어지는 스트로크를 하거나 친 볼이 네트에 걸리거나 코트를 벗어나게 됩니다. 이런 실수를 하고 나서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빨리 새로운 습관을 배우는 길입니다. 나쁜 습관을 버리려고 해서는 버려지지 않습니다. 좋은 습관을 배워야 나쁜 습관은 버려지게 됩니다. 어둠을 물리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빛을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나쁜 반복의 습관은 좋은 습관을 반복적으로 내 몸에 배우고 익히면 물러가게 됩니다.

내 삶에 좋은 것들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반복을 통해서 몸에 잘 익히고 배워야 합니다. 나는 매주일 설교를 준비하면서 반복적으로 힘쓰는 것이 성경 묵상의 습관이고 다른 하나는 신문 묵상의 습관입니다. 반복되는 묵상을 통과한 설교는 좋은 설교의 열매를 낳습니다. 그러나 좋은 반복은 반복하기가 어렵습니다. 나쁜 반복은 반복하기가 쉽습니다.게으름의 반복은 연습 없이도 계속 반복됩니다. 미련한 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습관은 어렵지 않게 반복됩니다. 좋은 반복을 계속하고 나쁜 반복을 그치는 것이 나의 삶을 새롭게 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나쁜 반복을 그만두는 것은 손을 잘라내고 혀를 잘라내는 것 이상으로 어렵습니다. 심지어는 죽어가면서 나쁜 반복을 계속합니다. 망하는 가운데서도 나쁜 습관을 끓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하나님과 깊은 묵상을 배우지 못하는 인생을 마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꿈만 꾸고 말만 하고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아쉽게 인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반복하여 좋은 습관을 위해서 도전하면 나쁜 습관들이 물러나고 좋은 습관은 내 것이 됩니다.

지난 주일 오후에는 교회의 짐을 정리했습니다. 온 성도들이 함께 2시간 여 수고를 한 결과 교회 마당 한 켠에는 한 트럭 분량의 버려야 할 짐들이 모아졌습니다. 지하실에서부터 본당 교육관 3층 다락방에 채곡하게 숨겨져 있던 오래된 낯선 짐들은 결국 쓰레기가 된 것입니다. 물론 어떤 것들은 다시 필요한 분들의 손에 의해 간택되어 다시 어떤 가정으로 보내지는 행운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대부분 버려진 짐들은 오래된 시간의 길이만큼 낡거나 녹슬거나 상해져서 버려지기도 하고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것들이기에 버려지기도 하였습니다.

버려야 할 짐들이 잘 버려진 정리된 교회당의 곳곳을 돌아보면서 아쉬움보다도 오히려 마음이 시원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한 달에 한번 이발소에 들려서 자란 머리카락을 미련 없이 깎아 버리고 난 뒤의 시원함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짐을 정리할 때의 수고로움 이상의 정리 정돈의 쾌감과 유익은 공동체 모두의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가정적으로 안정이 된 가정일수록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일 경우에 가방 정리와 책상정리가 잘 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정리정돈의 모습은 내면의 질서와 관련이 깊습니다.

질서 있고 정돈된 인생을 위해서 우리는 매일 쓰레기 정리가 필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쓰레기보다 더 무서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죄악의 쓰레기입니다. 내 안에 숨어 재워져 있는 버리지 않는 쓰레기들은 우리의 삶에 악취를 심하게 풍기곤 합니다. 그 더러운 냄새는 말을 통해서 얼굴의 표정을 통해서 행동을 통해서 다 전달이 됩니다. 때로 인생의 정리 정돈이 안된 삶을 사는 분들의 행동은 너무나도 무질서하고 어린아이 같은 무분별한 삶으로 안스러움을 자아내곤 합니다.

나는 매일 새벽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나의 마음을 청소하곤 합니다. 매일 놀라운 것은 매일 마음을 청소했지만 또 쓰레기가 채워져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버렸다고 생각한 쓰레기가 아직도 내 안에 남겨져 나의 마음에 악취를 내기도 합니다. 날마다 부지런하게 청소하지만 날마다 또 채워져 있는 쓰레기들을 보면서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은 정말 소망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 날마다 내 안에 쓰레기를 치우고 난 뒤에 새 마음으로 하루를 살 때에는 그 하루 속에 천국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쓰레기로 채워진 마음으로 하루를 살면 힘든 하루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인생의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서는 먼저 결단 해야 합니다. 누가 대신해서 나의 쓰레기들을 버려줄 수 없습니다. 내 안에 채워진 모든 쓰레기를 버려야 할 책임은 우선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먼저 버리기로 결단했다면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결단된 삶이 실행으로 옮기기 위해서 우선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를 쳐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비록 나를 버리고 고치는 시간의 복종은 고통스럽지만 그러나 마음 속에 영적인 질서가 잡히는 정리정돈으로 새사람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삶에 영적인 질서의 성숙한 삶이 세워지기를 소원합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요즈음 각 가정을 심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심방을 하게 되면 목회자로서 각 가정의 영적 기상도를 어느 정도 느끼게 됩니다. 병원의 의사는 환자의 몸을 진료하다보면 그 모습만 보아도 그 사람의 몸의 건강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20년 이상 목회를 하면서 가정을 방문하다 보면 어느 정도 그 가정의 영적 건강 정도가 느껴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믿음으로 세워진 가정은 행복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가정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보통 가정하면 한자어로 집가(家)와 뜰정(庭)으로 표현합니다. 가정은 외형적으로 보이는 집과 울 안의 모형을 칭한 것입니다. 영어에서는 집( House)과 가족(Family)를 합해서 가정(Home)이라고 합니다. 보통 동양에서는 가정의 중심은 집이고 서양의 가정은 가족이 중심입니다. 그러나 가정은 바로 집과 가족이 합쳐서 가정이 됩니다. 보통 이스라엘에서는 가정을 ‘오이코스’(Oikos)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말은 ‘누구 누구의 집’이란 뜻인데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집 또는 고넬료의 집과 같이 온 집으로 더불어 표현합니다. 이스라엘에게 가정은 한 집안의 혈연적 관계 뿐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맺어진 모든 가족을 가정이라고 합니다.

보통 한국에서는 가정을 친부모,부부, 자녀가 함께 살고 있는 집안의 가족을 가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집을 중심으로 맺어진 부모와 부부와 부모 자식의 관계는 인간의 조직체가 아니고 바로 하나님의 조직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으로 사람을 만들었으되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가정으로 관계를 맺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그대로 유효하여서 모든 가정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사람의 방법대로 세워가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가정을 만드신 하나님의 방법대로 가정은 세워져야 행복합니다. 어떤 사람의 전통대로 사람의 기준대로 세워지는 가정은 건강하게 세워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세워지는 가정은 행복하게 세워집니다.

가정의 대표적인 구성원은 남편과 아내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연합하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여 돕는자로 아내를 만들었습니다. 아담은 아내 하와를 보고 첫 고백이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였습니다. 우선적으로 남편은 아내를 나의 뼈 나의 살로 여기는 몸의 일부로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의 뼈요 살인 것으로 알고 귀한 나의 몸으로 복종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부부가 서로 하나로 연합된 가정이 행복합니다. 마치 미국의 50개주가 하나로 연합되어 나라를 이루듯이 서로 연합하면 하나의 가정을 만들어 행복하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부부가 서로 연합하여 갈때에 지속적으로 건강한 가정으로 세워져가기 위해서는 좋은 관계를 세워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건강한 관계는 건강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부부가 좋은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좋은 대화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대화가 통하는 부부가 될 때에 서로의 관계에서도 소통의 관계가 잘 됩니다. 하나님과 깊은 말씀과 기도가 있는 부부가 서로 간에도 깊은 대화를 통해 더욱 건강한 가정으로 세워가게 될 것입니다.

그 동안 뉴욕에 와서 살던 사택을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살았던 시간을 계산하여 보니 4년 6개월이 흘러갔습니다. 지금까지 살았던 한국의 연립 주택 같은 2층 사택은 우리에게 소중한 뉴욕의 추억을 갖게 한 곳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았던 사택은 주변의 좋은 식당들과 필요한 매점들이 있어서 생활하기에 좋은 면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대중 버스를 이용하기에는 적격의 좋은 로케이션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옮겨야 하는 때가 된 것인지 점점 부정적인 요소가 자꾸 삶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삶의 불편함을 통해서 결국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졸지에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사택에서의 삶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감사하였지만 이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것인지 불편함들이 자꾸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1층에 세든 중국인 집의 커다란 개의 사나운 울음소리는 항상 집을 드나들 때마다 거슬리곤 했습니다. 또 역겨운 담배 냄새가 방안에서 흘러나와 그 공기를 맡을 때에는 너무 불편했습니다. 그동안 주인에게 양해를 얻고 자그마한 세탁기를 이용하여 속옷과 양말들을 빨곤 했는데 결국 이것 마져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세탁기를 사용하면서 호스에서 흘러나온 물이 바닥으로 누수가 되어 1층 천장을 젖게 한 것입니다. 또 얼마 전에 사택 3층에 새롭게 들어온 가정은 2명의 사춘기 남자아이들로 인해서 너무 소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아이를 둔 부모로서 이해하고 참아야 할 문제이기에 아무 소리를 할 수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새벽마다 현관문을 여닫고 새벽기도를 나가야 하는 처지이기에 항상 조심하고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할 지경이었습니다.이제 새롭게 옮기는 곳은 독립된 출입구 문을 갖고 무엇보다도 좀더 조용하고 쾌적한 환경을 우선순위로 하여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삿짐을 싸면서 너무나도 버려야 할 것들이 집안에 산적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버리면 쓰레기들인데 여태껏 집안에 쌓아놓고 있었던 것은 욕심의 집착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미 몇 번 이사를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에 대해서 많이 포기하고 내려놓은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세상에 집착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왜 그렇게 계절마다 옷은 많은지…왜 그렇게 이런 저런 용도의 신발은 많은지…쓰지도 않는 살림도구들은 왜 그렇게 많이 모아두었는지… 이사를 하면서 집안 곳곳에 잔뜩 묻어있는 세상에 대한 욕망의 흔적을 보면서 저절로 하나님 앞에 부족함을 고백하게 됩니다.
문득 언젠가 이 땅을 떠나 하늘나라로 갈 때에 내가 정리해야 할 짐의 양을 생각하게 됩니다. 점점 나이가 더 들어서 결국 모든 세상의 삶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갈 때에 내가 정리해야 할 짐은 얼마나 될까? 너무나도 많은 짐을 남겨 놓으면 얼마나 뒤처리가 힘들까? 이번에는 이사한 집에서 좀더 단순하게 살아가리라 다짐하여 봅니다. 점점 남은 생애 단순한 삶을 날마다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기회가 될 것을 다짐하여 봅니다. 봄과 함께 이사를 하면서 나의 인생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새롭게 셋업 하는 기회가 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어김없이 올해도 봄과 함께 부활절을 맞이합니다. 새봄과 함께 맞이하는 올해 부활절을 통해서 먼저 우리의 마음 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절로 충만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015년 부활절은 우리 교회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교회적으로는 어쩌면 이곳 현재의 건물에서 드리는 마지막 부활절 예배일 수 있습니다.그래서 올해는 해마다 드리는 연합부활절 새벽예배에 참여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우리 교회당에서 드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중국 교회에 건물을 팔기로 계약하고 마지막 클로징의 단계를 앞두고 있습니다. 당시에 계약 조건 대로라면 이미 모든 것이 종료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중국 교회가 추진하고 우리 교회당의 리노베이션 허가 관계로 인해서 시간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4월 안에는 클로징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중국교회당이 교회 클로징 이후에 우리 교회가 무빙 되기까지 1년 동안은 사용할 수 있도록 양해를 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내년도 부활절 예배를 이곳에서 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는 정황입니다. 어쩌면 이곳을 다행스럽게 무료 렌트로 사용하면서 있지만 여러 가지 장애요소가 발생하고 불편함이 생길 경우에는 무빙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이 건물을 중심으로 많은 예배를 드리면서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곳의 시간들이 추억이 되고 그리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이 어제가 되고 오늘이 과거가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올해 이곳 건물에서 드리는 부활절 예배는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는 시간의 되어지기를 소원합니다.
다음, 봄을 여는 부활절 예배와 함께 우리 교회도 새로운 장소에 대한 구체적인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새로운 장소를 계약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 환경적으로 새로운 교회당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증거들은 있습니다. 건축위원회의 위원들과 함께 우리는 이미 그곳에 대한 정보와 조건들과 상황들을 알고 지켜보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클로징이 되면 우리는 새로운 장소를 구체적으로 계약을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의 여건과 형편에 비추어볼 때에 환경적으로 열림 속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그곳을 위해 마음으로 준비하고 기도하면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결정을 할 때에 2가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현실을 무시하고 너무 이상과 미래로만 생각하는 경우입니다.이런 경우에는 우리 교회의 재정과 교세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너무 지나치게 높은 기준으로 장소를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또 한가지는 너무 현실 만을 앞세우고 미래와 이상을 무시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분들은 오직 현실의 갖고 있는 돈 만으로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하는 합리적인 계산의 분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냉정하게 현실도 보지만 미래도 생각하면서 새로운 곳을 준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나누이지 않고 함께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새로운 교회당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4월과 함께 부활절예배를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교회 속에 충만하여서 새봄같이 약동하고 새롭게 도약하는 교회로 변화하기를 기대하며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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