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결혼한 첫째 딸이 아들을 출산했습니다. 20시간 이상의 힘든 진통 끝에 결국은 수술을 하고 다행스럽게 산모도 아기도 건강하게 모든 출산의 거대한 신고를 잘 치루었습니다. 기도하면서 기다리던 시간 끝에 맞이한 새생명의 아기는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대한 힘과 기쁨을 주었습니다. 새생명 아기의 기쁨은 태평양 바다의 그 광활한 기쁨이상으로 그랜드 캐년의 그 깊은 협곡의 기쁨보다도 에베레스트산의 그 높은 능력의 기쁨보다도 더 넓고 더 깊고 더 높은 것이었습니다. 부드러운 머리카락과 눈썹부터 오뚝한 코와 볼룩하게 생긴 입술과 고물거리는 발가락에 이르기까지 하나 하나가 신비 그 자체였습니다.

아기를 보면서 먼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지금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아기의 몸구석 구석은 하나님의 섬세하신 능력이 일하시는 감동의 현장이었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의 하나 하나 모든 것 가운데 함께 하셨습니다. 나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몸 안의 모든 기관들도 하나님이 모두 능력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눈을 뜨게 하고 울게 하고 먹게 하고 오줌과 똥을 싸게 하고 손과 발을 움직이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듯이 지금도 사람을 생명으로 만드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송축하고 찬송합니다.

무엇보다도 아기를 보면서 인간의 실존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실상은 아기입니다. 모든 인간은 부모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아기와 같이 하나님 앞에 살아갑니다. 아기는 아무 능력도 아무 힘도 없이 전적으로 부모의 도움을 받고 의지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아기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은 채 오직 부모의 능력에 힘입어 존재합니다. 아기는 비록 힘도 없고 능력도 없지만 부모의 도움과 능력으로 그 삶의 존재가 보장됩니다. 우리 모두 인간의 실상은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과 능력을 힘입어 궁극적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더욱 아기같은 인생을 보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어느덧 딸의 아기를 보면서 문득 나를 돌아보니 할아버지가 되어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벌써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손자를 보게 된 것입니다. 점점 무섭도록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의 속도 앞에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세월의 무게만큼 점점 느려지고 약해지고 희미해지는 몸의 약함을 받아들이면서 더욱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설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합니다. 더욱 하나님 앞에 아기같은 모습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함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 세대가 오고 한 세대는 가고 있는 가운데 모든 시간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 바라보게 됩니다.

새생명의 아기를 보면서 하나님의 크고 신비한 생명의 비밀과 기쁨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 모두의 삶 가운데 더욱 새생명의 기쁨이 풍성하게 누려지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점점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좋아하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를 좋아하지 않은 이유가 과거보다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점점 과거보다 사람들은 교회를 찾지 않고 있고 그결과 교회가 부흥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내가 신학대학원을 다니던 시기인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교회는 큰 부흥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가 되면서 교회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반응은 더 부정적이 되고 그 결과 교회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개인차도 있겠지만 교회에 대한 기대감을 더 갖는 사람들일수록 교회에 대해서 더 실망하는 이유들이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교회를 좋아하는 이유가 더 분명하게 있습니다.

내가 교회를 좋아하는 이유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내가 믿는 예수님은 교회에서 더욱 분명하게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눈에 보이도록 경험할 수 있도록 지금도 여전히 주님께서 각 사람을 통해서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 교회에 만나는 예수님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증거는 분명하게 주님을 사랑하며 예배합니다. 더 나아가 주님을 마음에 믿는 자들은 이웃들을 그 믿음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순종합니다. 여전히 이 시대 가운에 교회는 하나님 사랑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에 교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내가 교회를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비밀인 성경을 알 수 있도록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알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기회가 됩니다. 교회를 통해서 배우는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에서는 배울 수 없는 가장 깊고 높은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교회를 통해서 지금 여기에 필요한 하나님의 뜻을 알여주시기도 하시고 마음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지혜와 능력의 말씀을 공급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더욱 온전하게 변화시켜 가심으로 지금 여전히 교회가 필요함을 나타내십니다.

종말의 시대를 살면서 소망이 사라지는 가운데 내가 더욱 교회를 좋아하는 이유는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점점 세상은 갈등과 전쟁으로 희망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세상 가운데 희망이 없을수록 하나님 나라의 센터인 교회를 통해서 이땅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유일한 희망의 대안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 나라는 점점 이념과 이익의 필요 때문에 대립과 갈등과 싸움이 필연적으로 드러나서 충돌하게 됩니다. 불안하고 어두운 세상의 현실을 보면서 점점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질 주님이 왕으로 통치하실 하나님의 나라는 가까워지게 되는 것을 소망 중에 바라보게 됩니다. 항상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을 바라보게 하는 주님의 몸된 교회이기에 더욱 좋아하게 됩니다.

오늘은 베스트 초대주일입니다. 그동안 교회를 좋아하지 않았던 누군가에게 교회를 좋아하는 기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 가지 교회의 아픔과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앞으로 더욱 교회를 좋아하는 인생으로 변화되기를 소원합니다.

목회 현장에서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는 사람을 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이 있어서 개별적으로 더욱 알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인 사람의 모습도 있지만 개인마다 독특한 개성들은 개별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알기까지는 그 사람을 알 수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결과 목회 현장에서 항상 겪는 목회자들의 어려움은 사람들을 알지 못해서 겪는 관계의 어려움입니다.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에 더 까다로운 사람이 있고 더 세심하게 접근해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로 사람을 바로 알지 못할 때에 겪는 관계의 어려움은 결국 공동체 안에서 서로 연합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지난 주간에는 교회 담임을 처음 경험했다가 어려움을 당한 후배 담임목회자와 대화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2시간 가량 후배목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후배 목사님이 너무 교회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본인 자신은 전혀 자신이 모른다는 것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자신은 사람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아마도 나름대로 지금까지 사람들을 대면한 경험이 있어서 본인은 이미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하고 수용하지 못함으로 관계의 위기를 당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람을 모르고 관계에 실패하는 이유는 이기주의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나에 대해 관심이 많은 이기주의 속성이 있습니다. 이기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나의 의견에 대해서 말하는 자기중심적인 대화과 관계방식을 좋아합니다. 그 결과 상대방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합니다.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다음 이유는 다른 사람을 잘 알고 그 생각을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착각입니다. 그 사람의 구별된 숨겨진 개성을 잘 모른채 표면적인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을 단정짓는 경우가 많습니다.무엇보다도 사람을 가장 잘 모르는 이유는 고정적인 사고방식이 문제입니다. 자기 나름의 고정적인 생각들로 사람들을 쉽게 단정하면서 그 사람을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점점 관계가 단절되는 시대에 살아가면서 사람을 알기 위해서 더욱 소통이 필요합니다.자신의 답을 내려놓고 먼저 들으려고 하는 마음을 갖고 부드러운 관계를 갖고 소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나와 다른 개성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과 의견을 받아들이려고 할 때에 우리는 서로 알아가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나의 기준의 판단을 내려놓고 한 인격체로서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럴때에 우리는 서로 알아가고 관계가 연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을 나누는 집중력있는 나눔의 관계가 서로를 알아가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교회 가운데 서로의 관계가 소통을 통해서 서로를 더욱 알고 관계의 기쁨을 누리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드디어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습니다. 한국의 역사상 이번 대통령 선거는 가장 뜨거운 온 국민의 관심사였습니다. 시기적으로 가장 힘들고 어려운 혼돈의 때에 선출된 새로운 대통령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들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과연 혼돈의 시대에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역할은 무엇일까? 몇 년 전에 발행되어 아마존과 뉴욕타임스의 베스트 셀러였던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이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 미국 대통령의 통치에 대해서 가르쳤던 교수였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혼돈의 시대에 미국 대통령으로서 그 역할을 잘 감당했던 대통령들의 리더쉽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혼돈의 시대에 주목하는 대통령은 4명인데 그중에 한명이 에브러햄 링컨입니다. 그는 미국이 남북으로 분열되어 전쟁을 하였을 때에 대통령으로서 그 역할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사실 그는 미국 역사에서 미국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기도 합니다. 그는 변혁적 리더쉽으로 리더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결국 그는 노예해방을 선언하고 미국을 하나되게 했습니다. 많은 경우에 리더는 거래적 리더쉽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리고 상당한 경우에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리더들은 여기에 타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링컨은 공동의 유익을 위해 변혁적 리더쉽으로 많은 고통의 댓가를 지불하면서 결국 그 역할을 훌륭하게 감당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많은 대통령들이 자기와 가족의 이익 앞에서 타협하고 무너지는 가운데 리더쉽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특히 자녀들이나 부인이나 친척들의 비리로 인해서 불명예스럽게 퇴진을 하고 심지어는 감옥에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리더의 자리에서 공동체 나라를 위해서 온전하고 공정하게 감당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사명과 역할에 대해서 단호한 자기 이해가 전제되고 그것들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공동체의 선과 유익을 위해서 마땅히 리더의 역할은 사명적인 희생과 수고가운데 변질되지 않고 끝까지 섬겨야 합니다. 이것은 세상나라의 리더만 그런 것이 아니고 교회 공동체를 세워가는 리더도 동일합니다. 먼저 리더는 자기의 이익을 넘어선 공동체를 위하여 살아가는 비전과 섬김의 역활이 있어야 합니다.

점점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리더의 바른 역할이 더욱 필요한 시대입니다. 특히 교회의 경우에도 급격한 세상 변화만큼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그 가운데 리더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기중심적인 가치를 따르는 혼돈의 세상에서 교회공동체를 하나님의 뜻대로 보존하고 지켜내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주님의 뜻대로 섬기는 리더의 비전과 역할이 더욱 필요합니다. 이 시대의 리더는 자기의 야망을 내려놓고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섬기고 바르게 공동체의 변화를 이끄는 에브러험 링컨같은 변혁적 리더쉽이 요구됩니다.

혼돈의 시대 가운데 부름 받은 세상의 리더, 교회의 리더는 더욱 역활이 너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리더의 자리로 부름받은 자들은 먼저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이익을 부인하고 공동체의 유익과 선을 위해서 희생하고 섬기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나의 삶의 최고의 안식처 사택에는 사용하지 않는 피아노가 있습니다. 리빙룸 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피아노는 마치 오래된 고물처럼 사용되지 않은 채 그냥 집 한켠의 장식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끔 청소를 할 때에는 오히려 귀찮은 물건처럼 취급이 되기도 하고 집안이 좁다고 느낄 때에는 항상 버려야 할 일순위 후보가 되곤 합니다. 아내도 나도 전혀 피아노에 대한 소중함의 감정이 없습니다. 첫째 딸이 피아노를 전공하지 않기로 한날부터 피아노는 더 이상 의미없는 물건이 되고 만 것입니다 .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피아노의 운명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나라의 사명자로 교회에서 사용되는 평생을 살도록 사용하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 감사하게 됩니다. 피아노를 사용하여 연주자가 아름다운 연주를 하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교회가 크든 작든 관계없이 하나님이 도구로 사용하는 그 자체가 너무도 귀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일이 항상 계속되는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세상과 교회를 돌아보면 항상 나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당연한 것이 없음을 더욱 바라보게 됩니다.

교회 가운데 때로 자신이 감당하는 교회 사역을 너무 부담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물론 나름대로 여러 가지 사정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하나님이 나에게 맡긴 사명으로 여기고 나의 분량 안에서 감당하면 됩니다. 너무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하여서 잘 하려고 하는 마음을 갖을 때에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잘 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하는 것입니다. 꾸준하게 사명감을 갖고 사역을 감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열매도 맺게 하십니다. 그리고 사용되는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 가운데 모든 사역를 마치고 은퇴를 하신 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의 한결같은 고백은 이렇게 자신에게 은퇴의 순간이 빨리 오게될 줄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고생이 되고 힘은 들었지만 교회에서 사명자로서 사역을 하던 그 때가 인생의 가장 기쁜 순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때가 되면 아무일도 하지 못하는 채로 나의 삶의 자리를 그냥 지켜야 하는 그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날을 바라보면서 지금 나에게 맡겨진 주의 일들을 비록 작은일일지라도 기쁨으로 감당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느덧 한해의 상반기의 중심 6월이 되었습니다. 나의 교회 생활 가운데 나를 사용하시는 섬김과 헌신의 기쁨이 있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나를 사용하심으로 점점 교회가 온전하게 되는 기쁨을 우리 모두가 경험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올해 봄 4월이후에 두달간에 걸쳐서 목장 상담 심방의 시간을 갖았습니다. 집으로 찾아가는 심방 대신에 교회 목양실에서 성도들 가정과 대면하여 삶의 여러 가지 문제를 나누면서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항상 경험하는 것이지만 문제없는 인생은 한명도 없습니다. 겉으로 볼때에는 평온한 호수같은 삶이지만 안으로 들어가서 나눔을 갖으면 저마다의 아픔과 고난의 사정들이 모두에게 있습니다. 결국 이런 문제를 통해서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을 경험하면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문제를 만나면서 하나님의 인도와 도우심을 구체적으로 받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다양한 문제를 만났을 때에 바른 직면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문제의 현실 앞에서 바르게 직면할 줄 아는 사람은 해결의 기회를 갖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삶 가운데 발생하는 질병의 문제, 관계의 문제, 재정의 문제, 신앙의 문제를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서 직면하여 상담을 받고 바른 해결을 위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종종 우리는 문제에 대한 영적 무지 때문에 분별력없는 처방과 해결을 구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삶의 문제를 초월해서 그냥 계시는 분이 아니고 우리의 삶의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문제를 직면하면서 풀어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인생의 다양한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성경을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하실 때에 인생의 문제 앞에서 그 문제를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씀하십니다. 사실 대부분 우리가 겪는 삶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문제 앞에서 마음에 일어나는 두려움, 분노, 염려,원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일차적인 삶의 문제보다도 더 큰 문제의 중심이 됩니다. 우리는 먼저 문제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직면하고 문제를 관찰해야 합니다. 먼저 성경을 통해서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먼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구체적인 삶의 직면이 필요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인생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직면하면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바른 해결의 방향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못 속단하는 것은 나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무조건 하나님이 다 해결주실것이라고 결론을 내려서는 안됩니다. 내가 회개해야 할 것은 회개를 먼저 해야 합니다. 내가 게을렀다면 빨리 고쳐야 합니다. 내가 결단하지 못한 우유부단함이 있었다면 빨리 결단하는 용기를 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순종해야 할 부분은 순종해야 합니다. 내가 용서해야 할 것은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나의 책임은 생략하고 하나님의 책임으로 떠넘기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항상 우리 편이 되어주시기를 소원하시고 우리 삶을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고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지금의 삶에서 분명히 경험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정은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바르게 세워가야 합니다. 영적인 가정을 세워가기 위해서 우리 부모들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 리더쉽입니다. 물론 가정을 위해 부모로서 경제적인 책임의 역할 그리고 인간적인 돌봄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의 가정을 하나님의 뜻대로 합당하게 세워지기 위해서는 부모들의 영적 리더쉽이 우선 중요합니다. 가정의 부모들이 영적 리더쉽을 갖고 아이들의 멘토가 되고 가정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선택할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로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영적 리더쉽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리더쉽입니다. 부모로서 가장 먼저 필요한 영적인 삶은 우리의 원아버지이신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라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부모의 권위는 먼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먼저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서 배워야 합니다. 만일 부모가 하나님의 권위 앞에 순종하지 않고 그 질서를 따르지 않으면 우리의 가정의 자녀들은 하나님 중심으로 세울 수 없습니다. 부모가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여 말씀을 따르고 기도를 하는만큼 가정은 세워지고 자녀들은 세워질 수 있습니다.

부모로서 가정에서 우선 필요한 영적 리더쉽은 거룩한 생활의 본이 되는 리더쉽입니다. 가정은 우리의 믿음 생활의 최고의 적용의 장입니다. 가정에서는 우리의 모든 삶이 여과없이 그 민낯이 다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습관들이 날마다 드러나는 곳이 가정입니다. 부모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음과 삶이 다스려지는 경건의 능력이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질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아빠로서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먼저 보여줄 것은 구별된 주의 제자의 삶의 능력의 리더쉽이 보여지고 승리해야 합니다.

부모로서 가정에서 꾸준히 드러나야 할 영적 리더쉽은 변화와 성장의 리더쉽입니다. 여전히 부모도 계속해서 변화해야 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계속해서 공부해야 하고 또 자신을 훈련해야 합니다. 이전에는 돈을 벌기 위한 공부를 하고 기술을 공부했다면 부모가 되어서 영적으로 가정을 이끌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더욱 알고 공부하면서 영적인 깊이를 더해가야 합니다. 어떻게 가정을 영적으로 세워가야 할지, 어떻게 더욱 영적으로 관계를 해야 할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부모들이 영적으로 변화하는만큼 가정은 변화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말세에 우리의 가정이 영성있는 영적 리더쉽이 있는 부모로 인해서 더욱 온전히 세워질 때에 결국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기회가 됩니다. 우리의 부모들이 영적인 어른과 리더로 잘 세워져서 건강한 가정이 회복되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일생동안 가정을 이루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삶은 균형을 맞추는 일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균형을 이루는 것이 어려운만큼 균형잡힌 가정을 이루어가는 일은 너무도 힘든 주제였습니다. 가정은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또한 학교 생활, 직장 생활, 가정 생활, 교회 생활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만일 관계와 생활의 균형이 무너지면 가정을 망칠 수 있기 때문에 균형을 이루는 노력이 너무 필요합니다. 균형의 결핍이 있는 가정은 상처의 인생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습니다. 균형잡힌 가정은 관계와 생활에서 승리하는 삶을 안정적으로 살게 하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먼저 균형잡힌 가정을 위하여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이 맡기신 역할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남자를 가정의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남자는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영적 리더쉽을 갖고 가정을 세워야 합니다. 먼저 영적제사장으로 남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가정을 세워야 합니다. 가정을 하나님 중심으로 세워가는 남자의 영성은 아내를 사랑하고 가족을 위해 수고하는 희생을 통해서 균형잡힌 가정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하고 지혜롭게 아이들과 가정을 돌봄으로 균형잡힌 가정을 세워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 가정의 일상은 사소한 결핍으로 인해서 균형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세심한 돌봄과 수고가 필요합니다.

균형잡힌 가정을 위하여 의존성과 독립성의 분별력있는 선택이 요구됩니다. 먼저 남편과 아내가 주님의 뜻대로 각각의 삶을 살면서 서로 의존하는 것과 각각 독립된 삶을 살아가는 것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부부관계도 너무 의존할 때에 싫증이 날 수 있고 너무 독립될 때에는 외로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또한 자녀들을 양육할 때에도 너무 의존적인 아이들은 독립성이 부족할 것이고 너무 독립적인 아이들은 개인주의에 익숙한 삶이 되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이들에게 스스로의 책임도 훈련해야 하지만 연합하여 살아가는 공동체의 삶을 가르치기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의존하는 삶을 잘 배우면서 스스로 자신을 잘 세워가는 삶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균형잡힌 가정을 위하여 주님과의 관계와 가정을 먼저 생각하는 것의 균형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가정을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여 가정이 우상이 될 위험이 많고 눈에 보이는 자녀와 가정의 일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균형을 위해 먼저 마음 중심을 주님에게 두고 있는지 마음을 잘 돌아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가정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주님에게 우선순위를 내어줄 때에 주님께서 가정을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시간과 삶을 내어드리는 관계의 헌신은 우리 마음과 삶이 무장되어 가정을 더욱 세워가는 기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균형잡힌 가정은 하루 아침에 세워지지 않고 꾸준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고 하나님 뜻대로 날마다 반복적인 삶을 일관성있게 사는 지금의 삶을 살때에 균형잡힌 가정으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균형잡힌 가정으로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영광을 돌리기를 소원합니다.

올해로서 결혼 35년차를 맞이하게 됩니다. 신학대학원 시절 5월 봄날에 나는 아내와 고향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나의 인생에서 결혼은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 결혼입니다. 그러나 그 큰 하나님의 선물인 결혼은 가장 큰 인생의 모험이기도 합니다. 서양 격언에 “ 바다의 항해를 할 때에는 한번 기도하여라, 전쟁터에 나갈 때에는 두 번 기도하여라, 그러나 결혼식장에 갈 때에는 세 번 기도하여라” 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거친 파도보다 죽음의 전쟁터보다도 결혼은 힘든 모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혼은 단지 힘든 모험만은 아닌 인생의 가장 복된 경험이기도 합니다.

결혼 제도를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 가운데 남자 아담을 만드시고 그의 갈빗대로 여자인 하와를 만드셔서 서로 결혼하게 하셨습니다. 성경적인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연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창조 질서입니다. 지금 미국을 비롯하여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남자와 남자가 때로 여자와 여자가 결혼한다고 하는 것은 창조질서를 허무는 심각한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남자와 여자로 연합하게 하신 것은 서로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서로 남자와 여자가 연합하여 살아갈 때에 외롭지 않고 부족함을 해결하고 복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이 선물의 복이 되기 위해서는 결혼 제도를 만드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가정은 남자와 여자가 먼저 하나님을 가정의 주인으로 믿고 경외해야 합니다. 남자가 중심이 되거나 여자가 중심이 될 때에 가정의 연합은 어렵습니다. 남자와 여자 모두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순종하면서 세워져가는 결혼 생활이 될 때에 하나님의 복을 경험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인격적 경험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남자 그리고 여자는 서로 죄에 대해서 죽고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고 순종하면서 결혼 생활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

결혼의 복이 경험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거룩한 책임이 요구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각각 책임이 없는 결혼 생활은 지옥의 고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점점 결혼했던 부부들이 고통 가운데 이혼을 하고 상처 속에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된 결혼 생활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남자는 남자의 위치에서 여자는 여자의 위치에서 먼저 각자가 자신을 잘 세워가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를 사랑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복주시는 날마다의 결혼의 삶이 되기 위해서는 성경의 원칙대로 각각의 수고와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결혼이 우리의 삶 속에서 복되게 열매맺는 복된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세월이 흘러도 성경대로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으로 적용되어 생육하고 번성하며 풍성한 인생을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올해에도 부활절을 맞이하며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항상 그러하듯이 세상은 절망의 뉴스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세상 나라는 점점 치열하게 국가 간의 힘의 경쟁을 앞세운 냉전 관계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갈수록 자연 가운데서도 많은 위기의 징조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점점 지진의 소식, 기후 변화로 인하여 나타나는 생태계의 이상 변이의 소식, 심한 홍수와 토네이도와 같은 재앙의 소식들이 난무하는 현실입니다. 점점 우리의 눈에 보이는 교회들도 쇠퇴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현실 가운데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은 지금도 계속해서 회복의 삶으로 일하십니다.

부활절을 맞이하며 먼저 주님의 마음을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대하는 세상의 부정적인 삶은 평안을 빼앗고 부정적인 마음으로 익숙하게 만듭니다. 문제는 우리의 어둡고 부정적인 마음을 통해서 사탄은 더욱 우리를 부정적인 인생을 살아가게 만듭니다. 어떤 경우에는 세상을 살면 살수록 더욱 부정적인 마음의 패더라임이 견고합니다. 부정적인 어두운 마음은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제한합니다. 더 이상 내 마음에 부정적인 마음, 부정적인 말들을 허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회복되고 충만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부활절을 맞이하며 주님과 관계의 회복을 갖기를 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의심과 불신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로 회복되기를 소원합니다. 때로 우리는 베드로처럼, 제자들처럼 주님을 사랑하면서도 여전히 의심하고 불신하면서 주님과 관계가 멀어지기도 합니다. 성경의 베드로와 제자들이 주님에게 멀어졌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런 제자들과 관계가 온전하게 회복되기를 소원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나의 부족과 연약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담대히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주님의 손을 붙잡고 일어서 사랑의 관계를 맺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부활절을 맞이하며 친구, 이웃들과 사랑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가 서로 주안에서 서로 사랑하기를 기뻐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죄에 대해서 죽고 생명 가운데 부활하신 것은 우리가 더 이상 죄에 종노릇하지 않고 새롭게 살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더 이상 부활의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미움에 종노릇하지 않고 시기와 증오의 관계에 매이지 않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는 것은 이전과 다른 삶의 부활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십니다. 부활의 주님은 이제 믿는 자들과 지금 여기에 함께 계셔서 하나님의 나라의 생명의 삶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핵심 신앙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은 모든 죄에 대하여 주님과 함께 장사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주님과 함께 부활의 생명으로 살아나는 증거가 있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의 삶이 새롭게 회복되는 생명의 증거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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