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습니다. 한국의 역사상 이번 대통령 선거는 가장 뜨거운 온 국민의 관심사였습니다. 시기적으로 가장 힘들고 어려운 혼돈의 때에 선출된 새로운 대통령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들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과연 혼돈의 시대에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역할은 무엇일까? 몇 년 전에 발행되어 아마존과 뉴욕타임스의 베스트 셀러였던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이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 미국 대통령의 통치에 대해서 가르쳤던 교수였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혼돈의 시대에 미국 대통령으로서 그 역할을 잘 감당했던 대통령들의 리더쉽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혼돈의 시대에 주목하는 대통령은 4명인데 그중에 한명이 에브러햄 링컨입니다. 그는 미국이 남북으로 분열되어 전쟁을 하였을 때에 대통령으로서 그 역할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사실 그는 미국 역사에서 미국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기도 합니다. 그는 변혁적 리더쉽으로 리더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결국 그는 노예해방을 선언하고 미국을 하나되게 했습니다. 많은 경우에 리더는 거래적 리더쉽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리고 상당한 경우에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리더들은 여기에 타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링컨은 공동의 유익을 위해 변혁적 리더쉽으로 많은 고통의 댓가를 지불하면서 결국 그 역할을 훌륭하게 감당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많은 대통령들이 자기와 가족의 이익 앞에서 타협하고 무너지는 가운데 리더쉽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특히 자녀들이나 부인이나 친척들의 비리로 인해서 불명예스럽게 퇴진을 하고 심지어는 감옥에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리더의 자리에서 공동체 나라를 위해서 온전하고 공정하게 감당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사명과 역할에 대해서 단호한 자기 이해가 전제되고 그것들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공동체의 선과 유익을 위해서 마땅히 리더의 역할은 사명적인 희생과 수고가운데 변질되지 않고 끝까지 섬겨야 합니다. 이것은 세상나라의 리더만 그런 것이 아니고 교회 공동체를 세워가는 리더도 동일합니다. 먼저 리더는 자기의 이익을 넘어선 공동체를 위하여 살아가는 비전과 섬김의 역활이 있어야 합니다.
점점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리더의 바른 역할이 더욱 필요한 시대입니다. 특히 교회의 경우에도 급격한 세상 변화만큼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그 가운데 리더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기중심적인 가치를 따르는 혼돈의 세상에서 교회공동체를 하나님의 뜻대로 보존하고 지켜내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주님의 뜻대로 섬기는 리더의 비전과 역할이 더욱 필요합니다. 이 시대의 리더는 자기의 야망을 내려놓고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섬기고 바르게 공동체의 변화를 이끄는 에브러험 링컨같은 변혁적 리더쉽이 요구됩니다.
혼돈의 시대 가운데 부름 받은 세상의 리더, 교회의 리더는 더욱 역활이 너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리더의 자리로 부름받은 자들은 먼저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이익을 부인하고 공동체의 유익과 선을 위해서 희생하고 섬기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나의 삶의 최고의 안식처 사택에는 사용하지 않는 피아노가 있습니다. 리빙룸 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피아노는 마치 오래된 고물처럼 사용되지 않은 채 그냥 집 한켠의 장식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끔 청소를 할 때에는 오히려 귀찮은 물건처럼 취급이 되기도 하고 집안이 좁다고 느낄 때에는 항상 버려야 할 일순위 후보가 되곤 합니다. 아내도 나도 전혀 피아노에 대한 소중함의 감정이 없습니다. 첫째 딸이 피아노를 전공하지 않기로 한날부터 피아노는 더 이상 의미없는 물건이 되고 만 것입니다 .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피아노의 운명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나라의 사명자로 교회에서 사용되는 평생을 살도록 사용하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 감사하게 됩니다. 피아노를 사용하여 연주자가 아름다운 연주를 하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교회가 크든 작든 관계없이 하나님이 도구로 사용하는 그 자체가 너무도 귀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일이 항상 계속되는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세상과 교회를 돌아보면 항상 나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당연한 것이 없음을 더욱 바라보게 됩니다.
교회 가운데 때로 자신이 감당하는 교회 사역을 너무 부담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물론 나름대로 여러 가지 사정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하나님이 나에게 맡긴 사명으로 여기고 나의 분량 안에서 감당하면 됩니다. 너무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하여서 잘 하려고 하는 마음을 갖을 때에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잘 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하는 것입니다. 꾸준하게 사명감을 갖고 사역을 감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열매도 맺게 하십니다. 그리고 사용되는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교회 공동체의 지체들 가운데 모든 사역를 마치고 은퇴를 하신 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의 한결같은 고백은 이렇게 자신에게 은퇴의 순간이 빨리 오게될 줄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고생이 되고 힘은 들었지만 교회에서 사명자로서 사역을 하던 그 때가 인생의 가장 기쁜 순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때가 되면 아무일도 하지 못하는 채로 나의 삶의 자리를 그냥 지켜야 하는 그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날을 바라보면서 지금 나에게 맡겨진 주의 일들을 비록 작은일일지라도 기쁨으로 감당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느덧 한해의 상반기의 중심 6월이 되었습니다. 나의 교회 생활 가운데 나를 사용하시는 섬김과 헌신의 기쁨이 있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나를 사용하심으로 점점 교회가 온전하게 되는 기쁨을 우리 모두가 경험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올해 봄 4월이후에 두달간에 걸쳐서 목장 상담 심방의 시간을 갖았습니다. 집으로 찾아가는 심방 대신에 교회 목양실에서 성도들 가정과 대면하여 삶의 여러 가지 문제를 나누면서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항상 경험하는 것이지만 문제없는 인생은 한명도 없습니다. 겉으로 볼때에는 평온한 호수같은 삶이지만 안으로 들어가서 나눔을 갖으면 저마다의 아픔과 고난의 사정들이 모두에게 있습니다. 결국 이런 문제를 통해서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을 경험하면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문제를 만나면서 하나님의 인도와 도우심을 구체적으로 받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다양한 문제를 만났을 때에 바른 직면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문제의 현실 앞에서 바르게 직면할 줄 아는 사람은 해결의 기회를 갖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삶 가운데 발생하는 질병의 문제, 관계의 문제, 재정의 문제, 신앙의 문제를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서 직면하여 상담을 받고 바른 해결을 위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종종 우리는 문제에 대한 영적 무지 때문에 분별력없는 처방과 해결을 구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삶의 문제를 초월해서 그냥 계시는 분이 아니고 우리의 삶의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문제를 직면하면서 풀어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인생의 다양한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성경을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하실 때에 인생의 문제 앞에서 그 문제를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씀하십니다. 사실 대부분 우리가 겪는 삶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문제 앞에서 마음에 일어나는 두려움, 분노, 염려,원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일차적인 삶의 문제보다도 더 큰 문제의 중심이 됩니다. 우리는 먼저 문제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직면하고 문제를 관찰해야 합니다. 먼저 성경을 통해서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먼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구체적인 삶의 직면이 필요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인생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직면하면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바른 해결의 방향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못 속단하는 것은 나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무조건 하나님이 다 해결주실것이라고 결론을 내려서는 안됩니다. 내가 회개해야 할 것은 회개를 먼저 해야 합니다. 내가 게을렀다면 빨리 고쳐야 합니다. 내가 결단하지 못한 우유부단함이 있었다면 빨리 결단하는 용기를 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순종해야 할 부분은 순종해야 합니다. 내가 용서해야 할 것은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나의 책임은 생략하고 하나님의 책임으로 떠넘기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항상 우리 편이 되어주시기를 소원하시고 우리 삶을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고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지금의 삶에서 분명히 경험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정은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바르게 세워가야 합니다. 영적인 가정을 세워가기 위해서 우리 부모들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 리더쉽입니다. 물론 가정을 위해 부모로서 경제적인 책임의 역할 그리고 인간적인 돌봄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의 가정을 하나님의 뜻대로 합당하게 세워지기 위해서는 부모들의 영적 리더쉽이 우선 중요합니다. 가정의 부모들이 영적 리더쉽을 갖고 아이들의 멘토가 되고 가정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선택할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로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영적 리더쉽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리더쉽입니다. 부모로서 가장 먼저 필요한 영적인 삶은 우리의 원아버지이신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라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부모의 권위는 먼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먼저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서 배워야 합니다. 만일 부모가 하나님의 권위 앞에 순종하지 않고 그 질서를 따르지 않으면 우리의 가정의 자녀들은 하나님 중심으로 세울 수 없습니다. 부모가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여 말씀을 따르고 기도를 하는만큼 가정은 세워지고 자녀들은 세워질 수 있습니다.
부모로서 가정에서 우선 필요한 영적 리더쉽은 거룩한 생활의 본이 되는 리더쉽입니다. 가정은 우리의 믿음 생활의 최고의 적용의 장입니다. 가정에서는 우리의 모든 삶이 여과없이 그 민낯이 다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습관들이 날마다 드러나는 곳이 가정입니다. 부모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음과 삶이 다스려지는 경건의 능력이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질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아빠로서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먼저 보여줄 것은 구별된 주의 제자의 삶의 능력의 리더쉽이 보여지고 승리해야 합니다.
부모로서 가정에서 꾸준히 드러나야 할 영적 리더쉽은 변화와 성장의 리더쉽입니다. 여전히 부모도 계속해서 변화해야 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계속해서 공부해야 하고 또 자신을 훈련해야 합니다. 이전에는 돈을 벌기 위한 공부를 하고 기술을 공부했다면 부모가 되어서 영적으로 가정을 이끌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더욱 알고 공부하면서 영적인 깊이를 더해가야 합니다. 어떻게 가정을 영적으로 세워가야 할지, 어떻게 더욱 영적으로 관계를 해야 할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부모들이 영적으로 변화하는만큼 가정은 변화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말세에 우리의 가정이 영성있는 영적 리더쉽이 있는 부모로 인해서 더욱 온전히 세워질 때에 결국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기회가 됩니다. 우리의 부모들이 영적인 어른과 리더로 잘 세워져서 건강한 가정이 회복되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일생동안 가정을 이루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삶은 균형을 맞추는 일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균형을 이루는 것이 어려운만큼 균형잡힌 가정을 이루어가는 일은 너무도 힘든 주제였습니다. 가정은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또한 학교 생활, 직장 생활, 가정 생활, 교회 생활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만일 관계와 생활의 균형이 무너지면 가정을 망칠 수 있기 때문에 균형을 이루는 노력이 너무 필요합니다. 균형의 결핍이 있는 가정은 상처의 인생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습니다. 균형잡힌 가정은 관계와 생활에서 승리하는 삶을 안정적으로 살게 하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먼저 균형잡힌 가정을 위하여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이 맡기신 역할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남자를 가정의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남자는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영적 리더쉽을 갖고 가정을 세워야 합니다. 먼저 영적제사장으로 남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가정을 세워야 합니다. 가정을 하나님 중심으로 세워가는 남자의 영성은 아내를 사랑하고 가족을 위해 수고하는 희생을 통해서 균형잡힌 가정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하고 지혜롭게 아이들과 가정을 돌봄으로 균형잡힌 가정을 세워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 가정의 일상은 사소한 결핍으로 인해서 균형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세심한 돌봄과 수고가 필요합니다.
균형잡힌 가정을 위하여 의존성과 독립성의 분별력있는 선택이 요구됩니다. 먼저 남편과 아내가 주님의 뜻대로 각각의 삶을 살면서 서로 의존하는 것과 각각 독립된 삶을 살아가는 것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부부관계도 너무 의존할 때에 싫증이 날 수 있고 너무 독립될 때에는 외로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또한 자녀들을 양육할 때에도 너무 의존적인 아이들은 독립성이 부족할 것이고 너무 독립적인 아이들은 개인주의에 익숙한 삶이 되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이들에게 스스로의 책임도 훈련해야 하지만 연합하여 살아가는 공동체의 삶을 가르치기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의존하는 삶을 잘 배우면서 스스로 자신을 잘 세워가는 삶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균형잡힌 가정을 위하여 주님과의 관계와 가정을 먼저 생각하는 것의 균형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가정을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여 가정이 우상이 될 위험이 많고 눈에 보이는 자녀와 가정의 일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균형을 위해 먼저 마음 중심을 주님에게 두고 있는지 마음을 잘 돌아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가정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주님에게 우선순위를 내어줄 때에 주님께서 가정을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시간과 삶을 내어드리는 관계의 헌신은 우리 마음과 삶이 무장되어 가정을 더욱 세워가는 기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균형잡힌 가정은 하루 아침에 세워지지 않고 꾸준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고 하나님 뜻대로 날마다 반복적인 삶을 일관성있게 사는 지금의 삶을 살때에 균형잡힌 가정으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균형잡힌 가정으로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영광을 돌리기를 소원합니다.
올해로서 결혼 35년차를 맞이하게 됩니다. 신학대학원 시절 5월 봄날에 나는 아내와 고향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나의 인생에서 결혼은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 결혼입니다. 그러나 그 큰 하나님의 선물인 결혼은 가장 큰 인생의 모험이기도 합니다. 서양 격언에 “ 바다의 항해를 할 때에는 한번 기도하여라, 전쟁터에 나갈 때에는 두 번 기도하여라, 그러나 결혼식장에 갈 때에는 세 번 기도하여라” 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거친 파도보다 죽음의 전쟁터보다도 결혼은 힘든 모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혼은 단지 힘든 모험만은 아닌 인생의 가장 복된 경험이기도 합니다.
결혼 제도를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 가운데 남자 아담을 만드시고 그의 갈빗대로 여자인 하와를 만드셔서 서로 결혼하게 하셨습니다. 성경적인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연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창조 질서입니다. 지금 미국을 비롯하여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남자와 남자가 때로 여자와 여자가 결혼한다고 하는 것은 창조질서를 허무는 심각한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남자와 여자로 연합하게 하신 것은 서로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서로 남자와 여자가 연합하여 살아갈 때에 외롭지 않고 부족함을 해결하고 복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이 선물의 복이 되기 위해서는 결혼 제도를 만드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가정은 남자와 여자가 먼저 하나님을 가정의 주인으로 믿고 경외해야 합니다. 남자가 중심이 되거나 여자가 중심이 될 때에 가정의 연합은 어렵습니다. 남자와 여자 모두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순종하면서 세워져가는 결혼 생활이 될 때에 하나님의 복을 경험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인격적 경험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남자 그리고 여자는 서로 죄에 대해서 죽고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고 순종하면서 결혼 생활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
결혼의 복이 경험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거룩한 책임이 요구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각각 책임이 없는 결혼 생활은 지옥의 고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점점 결혼했던 부부들이 고통 가운데 이혼을 하고 상처 속에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된 결혼 생활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남자는 남자의 위치에서 여자는 여자의 위치에서 먼저 각자가 자신을 잘 세워가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를 사랑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복주시는 날마다의 결혼의 삶이 되기 위해서는 성경의 원칙대로 각각의 수고와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결혼이 우리의 삶 속에서 복되게 열매맺는 복된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세월이 흘러도 성경대로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으로 적용되어 생육하고 번성하며 풍성한 인생을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올해에도 부활절을 맞이하며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항상 그러하듯이 세상은 절망의 뉴스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세상 나라는 점점 치열하게 국가 간의 힘의 경쟁을 앞세운 냉전 관계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갈수록 자연 가운데서도 많은 위기의 징조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점점 지진의 소식, 기후 변화로 인하여 나타나는 생태계의 이상 변이의 소식, 심한 홍수와 토네이도와 같은 재앙의 소식들이 난무하는 현실입니다. 점점 우리의 눈에 보이는 교회들도 쇠퇴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현실 가운데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은 지금도 계속해서 회복의 삶으로 일하십니다.
부활절을 맞이하며 먼저 주님의 마음을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대하는 세상의 부정적인 삶은 평안을 빼앗고 부정적인 마음으로 익숙하게 만듭니다. 문제는 우리의 어둡고 부정적인 마음을 통해서 사탄은 더욱 우리를 부정적인 인생을 살아가게 만듭니다. 어떤 경우에는 세상을 살면 살수록 더욱 부정적인 마음의 패더라임이 견고합니다. 부정적인 어두운 마음은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제한합니다. 더 이상 내 마음에 부정적인 마음, 부정적인 말들을 허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회복되고 충만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부활절을 맞이하며 주님과 관계의 회복을 갖기를 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의심과 불신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로 회복되기를 소원합니다. 때로 우리는 베드로처럼, 제자들처럼 주님을 사랑하면서도 여전히 의심하고 불신하면서 주님과 관계가 멀어지기도 합니다. 성경의 베드로와 제자들이 주님에게 멀어졌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런 제자들과 관계가 온전하게 회복되기를 소원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나의 부족과 연약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담대히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주님의 손을 붙잡고 일어서 사랑의 관계를 맺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부활절을 맞이하며 친구, 이웃들과 사랑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가 서로 주안에서 서로 사랑하기를 기뻐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죄에 대해서 죽고 생명 가운데 부활하신 것은 우리가 더 이상 죄에 종노릇하지 않고 새롭게 살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더 이상 부활의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미움에 종노릇하지 않고 시기와 증오의 관계에 매이지 않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는 것은 이전과 다른 삶의 부활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십니다. 부활의 주님은 이제 믿는 자들과 지금 여기에 함께 계셔서 하나님의 나라의 생명의 삶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핵심 신앙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은 모든 죄에 대하여 주님과 함께 장사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주님과 함께 부활의 생명으로 살아나는 증거가 있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의 삶이 새롭게 회복되는 생명의 증거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대부분 교회마다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면서 특별새벽기도회 시간을 갖습니다. 우리 교회도 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시간을 갖으면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대부분 이민자로서 바쁜 삶의 일정상 매일 새벽기도를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난주간과 같은 특별한 시간의 날은 몸과 마음을 구별하여 새벽 시간을 통하여 주님을 묵상하는 구별된 삶이 필요합니다. 이런 기회를 통하여 자신의 삶과 신앙을 십자가에 비추어보면 예수님을 따라가는 무장의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내가 믿는 예수님을 성경을 통해서 믿음으로 바라보는 묵상이 필요합니다. 성경을 통해 예수님이 가신 고난의 역사의 시간을 함께 따라가면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우리를 위한 대속의 사건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의 죽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목박혔다고 선언하면서(갈2:20)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해 죽은 자로 여겼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죄에 대해서 죽은 자입니다. 고난 주간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서 죽은 죄성의 지배를 벗어나 예수그리스도의 지배를 받는 믿음의 삶을 각성하면서 몸으로 확인하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에게 연합된 자로서 성령님에 의하여 우리의 삶이 주님에 의해 다스려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을 쳐서 주님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몸은 타락한 죄성으로 인하여 태어난 육적 생명을 갖고 있습니다.그결과 예수님을 마음에 믿고 구원받은 영생의 새생명이 우리의 영혼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육체는 과거의 죄성을 좇게 됩니다. 그 결과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육신적인 성향을 좇으려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상에 머물러 삶을 사는 기간동안 몸으로부터 솟구치는 이전의 죄성에 대해서 부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과거 옛사람의 죄성은 철저하게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만 이길 수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출발은 자기 부정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과거의 육신에 대해서 철저하게 아니요라고 부정해야 합니다. 자기 부정이 없이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날마다 자기를 부정하고 나를 쫓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에게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앞에 갈 때에 비로서 성령님의 도움으로 나를 부인하게 하십니다. 모든 문제의 중심 그리고 모든 승리의 중심에는 바로 나가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주님이 살고 내가 살면 주님은 죽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은 자로 여기는 사람 가운데 주님이 살아 역사하는 삶이 됩니다. 내가 사망 선고를 확실하게 선포하는 날 주님이 내 안에 승리를 주시게 될 줄 믿습니다.
고난주간을 통해서 십자가의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내가 장사된 것을 깊이 묵상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인생은 반복되는 선택의 연속입니다. 선택은 우리의 분별력의 결과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바른 분별력을 갖을 때에 바른 선택을 통해서 더욱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특히 누구랑 결혼할지 어디에서 살아야할지 어떤 직업을 갖아야 할지 큰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또 삶의 작고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색깔의 옷을 입어야 할지 어떤 메뉴의 점심을 먹어야 할지 어떤 곳에서 시장을 보아야 할지 날마다 선택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일이 보여주시면서 삶을 인도하지 않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통해서 분별하게 하시고 선택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게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주셨습니다. 우리는 성경 속의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알고 믿고 깨달을 때에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우리가 분별을 잘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과 생각과 뜻들이 성경대로 더욱 온전함에 이르도록 자라야 합니다. 우리는 분별을 위해서 주의가 요구됩니다. 우선은 어린아이처럼 성경의 부분만을 보고 마치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오해하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나의 관점을 갖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오해입니다. 나를 부인해야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우리를 배우고 따라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분별력을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먼저는 자신을 부인하는 일입니다. 나를 부인하지 않는 마음으로 성경을 받아들이게 되면 바른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운동 레슨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방법을 내려놓지 않으면 코치가 좋은 레슨을 해주어도 적용이 안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생각을 내려놓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내가 알고 따라가기 위해서 먼저 내 안에 자신을 부인하는 가난한 마음이 요구됩니다. 내가 부인될 때에 주의 말씀을 받으면 주의 뜻대로 마음의 분별력이 생기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분별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꾸준한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합니다. 날마다 깨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알아가는 거룩한 습관이 필요합니다. 분별력의 근육은 날마다 반복하는 삶을 통해서 평생을 지속하는 견고함 가운데 얻어질 수 있습니다. 제일 무서운 사람이 책 한권 읽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단편적인 성경 지식으로 분별력은 얻어질 수 없습니다. 분별력있는 선택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합당한 분별력으로 선택되어진 삶은 의와 평강과 희락을 우리의 마음과 삶에서 경험하는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체험하게 합니다.
또 우리 곁에 찾아온 봄을 맞이하여 우리의 마음을 개간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내면을 채워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분별력있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지난 주간 한국의 산불 뉴스를 지켜보면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번 산불은 한국 역사상에 기록적인 규모의 피해를 준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때문에 불은 삽시간에 번졌고 모든 장비를 동원하여 진화하려고 노력해도 소용이 없을 지경이 된 것입니다. 산불로 졸지에 하루 아침에 평생의 삶의 보금자리인 집과 모든 재산을 잃고 임시 거주지에서 걱정과 염려로 보내는 이재민들의 모습은 그 무슨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특히 갑자기 불어 닥친 산불로 인해서 제대로 피신도 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생명을 잃어버린 분들의 아픔은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산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레슨하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산불은 인간의 엄청난 기술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깨닫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한 순간에 태우는 불의 위력 앞에서 오직 하늘만을 바라보아야 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철저하게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서 해결사가 되어 모든 불이 잡히게 되고 모든 상황이 종료가 되면서 소중한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당연할 것 같았던 매일의 평상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큰 축복인가를 돌아보게 하는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주어진 내 것이라고 여겼던 집과 소중한 재산들이 결코 내 것이 아닐 수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점점 예측할 수 없는 위기를 직면하게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우리의 일상이 무너질 수 있는 여러 재앙들이 우리 앞에 더 많이 찾아오는 시대가 점점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재앙 앞에서 분명히 불안하고 두려운 시간이 되기도 하지만 영적으로는 더욱 깨어서 삶을 준비하는 시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 재앙에 대해서 종말론적인 현상으로 말씀하시면서 이런 시간 가운데 우리가 더욱 영적으로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세상의 삶에 빠져있는 우리의 영혼을 깨어서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기를 소원하십니다.
인생의 위기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기회입니다. 인간은 내가 약함을 인정할 때에 강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위기를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의 기회가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스스로 강한 자로 살기를 노력하고 배웁니다. 그 결과 우리는 많은 성취를 얻어내고 성공한 것 같은 만족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여러 가지 위기의 사건들은 우리에게 스스로를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온전한 시간이 됩니다. 그리고 모든 인생의 위기의 시간들은 영원한 안전지대인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피난처 하나님의 도움과 인도하심으로 완성되어야 할 존재들입니다.
위기가 기회가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결단이 필요합니다. 위기에 포로가 되어 부정적인 인생을 살지 않고 믿음의 결단을 통해서 새로운 인생의 기회로 삼고 도전하기를 소원합니다.